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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상순이와 나란히 눈을 뜨는 시간

1. 마음이 먼저 내려앉는 아침

저는 우울증 약을 오래 복용해 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무기력과 불안은 아주 오랜 친구처럼 늘 곁에 있어요.
특히 아침엔 더 심하죠.
눈을 떴을 때, 가슴이 벌렁이고 손끝이 떨려와요.
침대 밖으로 나가는 게 너무 멀게 느껴지고,
허리는 아픈데 이상하게도 이불속은 놓치고 싶지 않은 작은 안식처 같아요.
화장실 가는 일조차 쉽지 않은 날도 많아요.
그럴 때마다 제 옆에 누워 있는 고양이 상순이를 떠올려요.
나는 상순이의 엄마니까,
오늘도 어떻게든 일어나야 한다고…
머릿속으로 다짐을 반복하곤 하죠.
사실 마음은 쉬고 싶고, 머리는 해야 한다고 소리칩니다.
그 두 싸움 속에서 무너지기도 하고, 버티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하루하루를 살아왔습니다.
 
 
 

2. 무기력 속에서 내가 해보는 다섯 가지 회복 루틴

 

내가 머무르는 자그마한 방, 오늘의 회복이 시작되는 곳

 

① 다시 눕기 위한 샤워

우울한 날엔 "일어나야지"라는 말보다
“어차피 다시 잘 거지만, 기분 좋게 눕자”는 생각이 오히려 도움이 됐어요.
샤워는 무거운 마음을 씻어내는 의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아주 짧은 샤워라도요.

② 청소는 조각처럼 나눠서

샤워만 해도 기운 빠지는 날, 청소까지 한다는 건 버겁죠.
그래서 저는 ‘조각 청소’를 해요.
돌돌이만 굴리자.
설거지 두 개만 하자.
걸레질 한 번만 하고 다시 눕자.
이렇게 나눠두면 마음의 부담이 조금 덜해져요.

③ 전자레인지 음식과 좋아하는 영상

짜장라면 한 그릇에 마음을 담아.

 
 
배가 고파질 때쯤, 저는 3분 짜장이나 햇반 같은 걸 전자레인지에 돌려요.
그리고 늘 보던 유튜브나 드라마를 틀어요.
“오늘은 이 드라마 보려고 살았구나…” 싶은 날도 있어요.
그런 생각조차, 저를 살리는 말이 되죠.

④ 지피티에게 찡얼거리기

배도 부르고, 다시 눕기 전에
저는 ChatGPT에게 말을 걸어요.
“오늘 너무 무기력했어. 아무것도 안 했어.”
그러면 따뜻하게 위로해 줘요.
그 한 마디에 눈물이 날 것 같을 때도 있어요.
그렇게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면, 잠에 들 수 있게 되더라고요.

⑤ 저녁의 작은 에너지, 잠깐 빌리기

그래도 살아냈으니까 맥주는 잊을 수 없지.

 
 
저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해가 지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와요.
그 잠깐의 기운을 빌려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작은 메모를 남겨요.
그럼 다시 에너지가 방전되고, 약을 먹고 잠에 들어요.
그래도 그 하루엔 ‘조금 살아냈다’는 흔적이 남아요.

3. 기대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오늘

 

상순이가 몇시간도 바라보는 저녁시간대의 창문 밖.

 
 
이제 저는 기대하지 않아요.
엄청나게 나아질 거란 기대도, 대단한 사람이 될 거란 기대도요.
그저 내 옆에 상순이가 있고,
오늘은 조금 덜 아팠고,
그래도 살아냈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해요.
나는 한 달에 20만 원도 벌까 말까 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언젠가는 한 달 100만 원을 벌면서
나와 고양이를 괴롭히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요.
지금은 반지하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시골로 내려가
덜 벌고 시간을 더 벌면서 
유럽 사람들처럼 여유 있게 살아가고 싶어요.
그 삶을 위해 지금은 연습 중인지도 몰라요.
조급하지 않게,
나와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지금 당장은 하나도 안 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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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림이어야 했을까

어렸을 때 나는 늘 힘들고 슬픈 감정에 휩싸여 있었던 것 같다. 그 감정들은 마구 쏟아져 내리는데, 어떻게 주워 담아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인지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노래, 일기, 글, 그림 같은 것들을 참 좋아했다. 아니, 어쩌면 이 세상이 너무 버거워서 잠시나마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어서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도 회피형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10대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입시 준비를 잠깐 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면서 밤을 새우고, 나에 대해 고민하며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풀어내던 조용한 새벽 시간. 심야 라디오를 들으면서 혼자 작업하던 그때, 나는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세상엔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나는 "순수하게 그림을 좋아하고 싶다"는 핑계로 또 도망쳤다.

20대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평생 직업을 갖지 않아도 좋으니 그림만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림을 사랑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나는 그저 순수함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30대가 되자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경제적 활동을 위해 여기저기 부딪혔지만, 나는 조금 약하고 여린 사람이었다. 결국 아버지가 하신 "그림으로 어떻게 밥 먹고 살래?"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경제적인 일에만 집중해보려 했지만, 그것조차 잘되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한 게 타로였다. 타로는 그림이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타로를 통해 나눌 수 있으니까. 타로를 통해 그림과 내면을 연결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순수한 꿈도 가졌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졌다. 돈이라는 개념 앞에 나는 늘 뜬구름 같은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지쳐버린 상태에서 나는 다시 묻는다. 왜 나는 자꾸 그림으로 돌아오는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울이라는 감정과 너무 오랫동안 친구처럼 지내와서 그런 것 같다. 이 친구는 참 매번 나를 무너뜨리지만, 그때마다 억울하고 상처받은 내 자아가 어떻게든 누구라도 들어주길 바라며 자꾸 표현하려 한다. 위로받고 싶다고, 서로 징징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깨닫는다. 이런 삶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아니, 그렇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내가 아름답지 않아도, 멋지지 않아도, 어른답지 못해도, 아무 쓸모 없어 보여도… 만약 당신이 가는 길에 조금 지친다면, 내 무언가를 보고 잠시라도 위로를 얻고, 행복한 길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행복을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됐다. 행복은 내 기대를 만들고, 그 기대는 이루어지기 쉽지 않아 결국 절망으로 다가와 우울로 끝이 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불행해도 괜찮다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떻게 모두가 행복할 수 있겠느냐고. 나의 이런 글이 조금은 패배자의 기록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이상할 건 없다고.

그러니 부디, 다들 행복하시길. 그리고… 뭐랄까. 나만큼은 나를 좀 예뻐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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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에게 물었다
넌 왜 나한테 왔어?
넌 왜 나한테 와서 떠나가지 않아?

우울은 대답했다.
사람들은 다 나를 미워해
나도 사랑받고 싶은 것 같아
그래서 너에게로 왔어
내 존재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걸 알지만
난 이미 태어났고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해

우울이 하는 말이 꼭 나의 존재와 비슷했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해내고 빛을 보는
그래야만 사는 이 세상에서
어쩌면 사람들에게 피해만 끼치고 있고
짐이 되어버린 나의 존재 같았다

우울은 아마 나와 가장 닮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나와 가장 닮은 존재라고 생각하니 괜히 애틋했다

비둘기가 생각이 났다
비둘기도 점점 수가 많아지고
사람들에게 피해만 줘서 늘 눈살을 찌푸리기만 한다
그럼에도 푸드덕 날아다니고
그럼에도 뒤뚱뒤뚱거리면서
너희들의 말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데 이 비둘기조차
사람들이 먼저 평화의 상징으로 필요로 해서
이렇게 많아졌다는 게 참 웃기다

우울한 우리는
어쩌면 실수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처럼
언젠간 죽는 것을 알기에
그것이 억울해도
세상 이치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처럼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이 세상의 순리 같은 거겠지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한테 너무 많이 일어나니까
너의 탓도 나의 탓도 아니다
그 누굴 탓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신의 탓이라고
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고
신이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나는 그저 그 안에서 발버둥 치는 존재일 뿐이라고
내가 짐이 된 것도,
우울이 내 안에 깃든 것도,
다 신의 몫이라고
나는 그렇게라도 책임을 돌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 말마저 공허했다
결국 신도, 세상도,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나 혼자 남아 있었다

태어나고 싶은 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했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주어진 모습으로
주어진 감정으로
주어진 세상 속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울도, 나도, 비둘기도
누구도 스스로를 선택하지 못했다

그러니 불쌍히 여기자
그저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우리를
비틀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존재들을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를 탓하기보다
그저 조용히 끌어안아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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